애플의 OTT 서비스인 Apple TV+가 한국에 상륙한 지 오늘로 딱 1년째입니다. OTT 최고의 격전지라는 한국에서 Apple TV+는 지난 1년 간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 왔을까요? 또한 우리가 향후 이 플랫폼에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얼마 전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토트넘 홋스퍼 FC와 축구경기를 치렀죠. 그런데 TV에선 볼 수가 없더군요. ‘쿠팡플레이’라는 OTT 서비스를 가입해야 했던 겁니다. A매치 축구를 돈 내고 봐야 하는 시대라니, OTT(Over-the-top media service)의 전성시대라는 것을 절로 실감하게 되더군요.
실제로 미디어 소비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죠.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대세입니다. TV편성표가 무의미할 정도죠. 요즘엔 아예 “TV 본다”는 말 자체도 생소합니다. “넷플리스 본다”, “유튜브 본다”는 말로 대체됐죠. 그래서인지 서비스 플랫폼도 다양합니다. 이젠 마치 상징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넷플리스’부터 ‘토종’이라는 타이틀로 경쟁하는 ‘티빙’, ‘웨이브’, ‘왓챠’까지 혼전 양상을 띠고 있죠.
지난해 11월 4일 한국에 출시된 ‘Apple TV+’(이하 애플tv)도 그런 흐름의 한 줄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묵직함은 뭔가 달랐죠.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할 것 없이 세계 최고의 혁신을 구가해온 애플이니 만큼, 콘텐츠도 뭔가 다를 것이라는 묵직한 기대감 일입니다. 그런 기대감은 어떻게 발현되었을까요?
chap 1. 애플의 게임체인저 본능…OTT 시장에서도 가능할까?
개인적으로 OTT 서비스에 대해 처음 가졌던 느낌은 ‘과잉’이었습니다. TV, 종편, 케이블에 유튜브까지…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하우스 오브 카드’나 ‘기묘한 이야기’ 같은 초기 인기작들이 회자될 때만 해도 마니악하다는 인상이 강했죠.
하지만 OTT는 급속히 미디어 소비의 ‘뉴노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파격적인 주제 및 소재로 이뤄낸 콘텐츠의 다양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미디어 소비의 자율성, 그리고 팬데믹이라는 시대의 특성까지 겹쳐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됐죠. 전문가들 역시 “OTT가 이렇게나 빨리 TV를 압도할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다소 보수적인 필자의 경우만 봐도 OTT의 영향력은 금세 체감됩니다. 고어‧좀비물 일색이라며 OTT에 손사래를 치던 필자 역시 현재는 습관적으로 넷플릭스를 켜는 수준으로 바뀌었어요. 시청의 자율성과 선택의 다양성의 유혹은 쉽사리 떨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2019년 11월, 애플이 OTT 시장에 전격 합류했을 때 기대가 컸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그들이 지금껏 보여줬던 게임체인저의 면모가 콘텐츠와 결합된다면 어떨까?’하는 기대였습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통해 애플이 보여줬던 행보는 그야말로 화려했습니다. 음악과 모바일, 그리고 컴퓨터 산업 전반을 요동치게 할 정도의 영향력이었죠. 애플 스튜디오의 진두지휘 아래 오리지널 콘텐츠에만 집중한다는 방향성도 마음에 들었고요.
통상 미디어 콘텐츠의 만듦새는 투입된 돈과 정비례한다는 게 정론입니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하면 일단 극장에 달려가는 것도 그 때문이죠. 넷플릭스의 초반 돌풍 역시 막대한 자본과 자원에 기인할 겁니다. 그런 맥락이라면 애플 역시 뒤질 게 없죠. 제작 확정과 동시에 막대한 투자금액을 끌어당기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제작 방식을 감안하면, 이미 비슷한 방식을 예고한 애플tv의 콘텐츠도 설득력을 가지기에 충분할 겁니다. 향후 몇 년 간은 돈 생각보다는, 그저 독자를 모으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청사진 역시 이용자 입장에선 반가운 선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판을 뒤흔들 줄 알았던 애플tv는 넷플릭스가 득세한 OTT 시장에서 좀처럼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죠. 미국에선 출시 2년이 넘도록 3%의 점유율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2년이면 플랫폼의 색깔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일 텐데 말이죠. 강력한 운영체계와 디바이스를 보유한 데다, 가장 충성도 높은 팬을 보유한 것으로 소문난 애플의 입지를 감안하면, 자존심이 꽤 상할 법한 수치입니다. 태풍은커녕 실바람도 일으키지 못했으니까요.
부진의 꼬리표는 우리나라에서도 따라 붙었습니다. 지난 2021년 11월 4일부터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그다지 신통치가 않았죠. 비슷한 시기에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플러스조차 힘겨워할 정도의 OTT 격전지에서 애플tv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거예요. 월 6500원, 하나의 계정으로 6명 동시 이용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 정책도 소용없었습니다. 우리 배우들이 출연한 ‘파친코’ 정도 외에는 당장 떠오르는 작품도 없으니, 그만큼 화제성이 떨어진다고 봐야겠죠. 마니아들 사이에선 “숨겨진 보석 같은 작품이 꽤 있다”라고 평가받지만, 글쎄요… 앞으로 애플tv가 이름값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chap 2. 오리지널과 현지화, 결국은 콘텐츠로 풀어야 할 과제
올해 초 애플tv가 반짝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애플tv의 오리지널 콘텐츠인 영화 ‘코다(coda)’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3관왕을 수상한 것이 계기였어요. OTT 플랫폼으로서 이는 굉장한 성취입니다. 넷플릭스가 오스카상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이는 동시에 애플tv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코다는 청각장애인 가족의 성장기죠. 감동적이고 세련된 영화지만, 엄밀히 말해 대중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애플tv에 대해 지나치게 묵직하고 다소 마니악한 콘텐츠를 만든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리는 이유죠. 코엔 형제나 M. 나이트 샤말란 등 애플tv가 내세우는 연출자들도 작품을 쉽게 만드는 분들은 결코 아니고요.
사실 평범한 시청자가 보기에 OTT서비스 고유의 색깔은 해당 플랫폼의 킬러 콘텐츠 한 두 개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아직도 넷플릭스 하면 피칠갑을 하고 달려드는 좀비 떼가 가장 먼저 생각나거든요. 공교롭게도 제가 넷플릭스에서 가장 처음 봤던 작품도 킹덤이었습니다. 넷플릭스의 작품은 모두 잔인하고 자극적일 것 같은 생각마저 들죠. 실제로 넷플릭스 역대 인기순위 1‧2위 ‘오징어게임’과 ‘종이의 집’을 생각하면 그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고요.
디즈니플러스는 판타지‧히어로물의 색깔이 짙죠. 우리나라에 상륙할 당시 마블의 위상은 어마어마했으니까요. 어쩌면 마블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과 디즈니플러스가 예상 밖으로 고전하는 것은 서로 연결되는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국내 토종 OTT로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보여주고 있는 ‘티빙’은 여성스럽고 세련된 느낌이 강합니다. ‘환승연애’나 ‘술꾼도시여자들’ 같은 킬러 콘텐츠의 영향이 크겠죠.
애플tv는 어떨까요? 가장 많이 알려진 ‘파친코’는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을 덤덤하게 표현하는 대하드라마입니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의무감으로 봐야 할 것 같고, 애써 감동해야 할 것 같은 인상이죠. 스튜디오의 완벽한 통제 하에 유명 제작사들과 프로듀서들이 제작하는 애플tv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현재까진 약간 어긋난 노선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는 OTT플랫폼이 갖게 되는 또 하나의 커다란 과제와 연결됩니다. 바로 ‘현지화’에 대한 얘기죠.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OTT의 미덕은 엔터테인먼트의 극대화로 보입니다. 최근 후발주자인 ‘쿠팡플레이’를 급성장시킨 콘텐츠가 ‘SNL코리아’인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죠. 하지만 애플tv의 콘텐츠는 미세하게 ‘문화의 벽’ 같은 게 존재하는 느낌이에요. 가뜩이나 타사 대비 오리지널 콘텐츠의 수가 현저히 부족한데, 그마저도 국내 안방에서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 없는 거죠. 우리 시장을 겨냥해 야심 차게 선보였던 ‘닥터브레인’의 평가가 저조했던 것부터 잘못된 단추였을지도 모릅니다. 넷플릭스가 ‘킹덤’으로 국내 시장에 연착륙했던 것과 정반대의 행보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서비스 론칭 시점 애플의 출사표를 떠올려보면, 그들은 그저 그들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을 뿐이죠. 애초에 작품 숫자를 채우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뛰어난 작품성과 메시지를 담은 소수정예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으니까요. “돈을 버는 것보다 양질의 오리지널 콘텐츠 리스트를 확보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홍보나 프로모션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결국은 콘텐츠겠죠. 과연 그들의 남다른 취향이 이번에도 통할까요? 향후 애플tv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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