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키워드는 ‘일상 회복’이었죠. 영화관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데믹으로 2년 넘게 고전하던 극장에 모처럼 순풍이 불었죠. 백미는 역시 ‘범죄도시2’였어요. 위세 등등한 ‘천만 영화의 귀환’이었죠. 그 영화,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저 역시 재밌게 봤어요. 영화의 재미도 재미지만, ‘회복’이라는 상징성이 더 강렬했던 것 같아요. 기대감에 부풀어 개봉일을 기다리고, 더 좋은 자리를 득하려고 예약 경쟁을 펼치고, 상영 시간 한참 전에 도착해 이리저리 구경도 하고, 관람 후엔 맛있는 걸 먹으면서 영화 내용을 복기하는 일상의 회복 말이에요. 흔하디 흔한 게 영화관 데이트였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일상을 누린 게 정말 오랜만이더라고요. 거기에 영화까지 만족스러웠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죠. 해당 작품은 총 1269만 명의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고 해요.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 첫 번 째 천만 관객 돌파 영화가 된 것이죠.
영화 관람 이후 영화보다 더 흥미로운 소식을 듣게 됐어요. ‘범죄도시’라는 타이틀의 영화를 8편까지 구상하고 있고, 3‧4편은 이미 제작 중이라는 얘기였죠. 반가움보다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의구심이었어요. ‘글쎄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사실 2편을 재밌게 보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관람 경험 자체의 만족도에 가까왔거든요. 단일 영화로서의 내적 완성도는 1편보다 못하다고 봤어요. 캐릭터에 대한 호감도와 의리로 그냥저냥 볼만했다는 인상이었죠. 그런데 이걸 6개나 더 봐야 한다고? 그럼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죠.
chap 1. 범죄도시2…‘전편보다 낫다 vs. 전편만 못하다’
물론 범죄도시2가 전편보다 낫다는 후기도 많아요. 흥행 결과가 이를 증명하겠죠. 무려 두 배 넘는 관객을 모았으니까요. 그 성취가 전편의 후광에 힘입은 것이든, 캐릭터의 매력에 기인한 것이든 그 역시 프랜차이즈의 자산임을 부인할 수 없죠. 메인 빌런에 대한 호평도 잇따랐어요. 경찰이 범죄자 때려잡는 초 단순한 플롯이니 만큼 범죄자의 카리스마와 흡입력도 중요한 요소죠. 2편의 강해상(손석구 扮)이 1편의 장첸(윤계상 扮)과 끊임없이 비교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많은 관객들이 “강해상이 장첸 못지않은 매력을 보여줬다”며 후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제 감상은 조금 달랐어요. 1편은 저에게 굉장히 균형감이 좋은 영화로 남아 있거든요. 현실과 허구의 균형이 적당해서 보는 내내 ‘그래도 어딘가 저런 경찰이 있을 거야’라는 기대감을 만끽할 수 있었죠. 주인공에게 다소 ‘먼치킨’(비현실적으로 강력한 사기 캐릭터) 같은 면이 있지만, 상황 전개의 묘를 발휘해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현실감을 불어넣었어요. 메인 빌런 역시 ‘그래, 그럴법하지’라는 경계선 내에서만 움직였죠.
영화를 관통하는 두 가지 코드인 폭력과 유머도 그랬어요. 폭력에 대한 설정이 꽤나 자극적이었지만 표현은 절제되어 있었고, 코미디는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억지스럽지 않았죠. 왜 이런 거 있잖아요. 식당에서 익지도 않은 고기를 허겁지겁 먹으며 “이거 소고기라서 괜찮아”라는 후배에게, 능청스럽게 “야 인마, 이거 양고기야”라고 말하는 장면. 이런 톤이 1편의 지배적인 유머코드였죠.
반면 2편은 힘이 ‘팍’ 들어간 느낌이었어요. 특히 전 편에서 ‘통했던’ 부분에 힘이 크게 실렸죠. 먼치킨스러운 주인공과 폭력, 그리고 유머예요. 하지만 조금 과잉이란 느낌입니다. 전 편의 미덕으로 꼽았던 균형감이 살짝 어긋나는 건 그 때문이죠.
먼저 담백하고 깔끔했던 자극은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 보였어요. 솔직히 ‘이게 어떻게 15세 관람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이 꽤나 많았죠. 적재적소에 자연스레 스며들던 코미디는 억지스럽고 과해졌어요. 비슷한 패턴을 답습하니 식상하기까지 하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1편이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대본 없이 잡담하는 느낌의 유머였다면, 2편은 ‘개그콘서트’에서 단물 다 빠진 장수코너를 보는 것 같았어요. 약간의 트리거만 있어도 어떤 말과 행동이 나올지 전부 예상되는, 짜고 치는 코미디요. 가장 대표적인 건 역시 “진실의 방으로” 같은 대사겠죠.
캐릭터도 과해졌어요. 솔직히 2편의 마석도 형사는 그냥 영화 ‘이터널스’의 길가메쉬에요. 거의 메타휴먼이란 얘기죠. 성격조차 뭔가 히어로 같아졌어요. 전 편의 캐릭터는 적당히 때도 묻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스탠스였다면, 이번에는 그야말로 순수한 정의의 사도예요. 캐릭터 붕괴를 떠나 현실감이 훅 떨어지죠.
‘아치 에너미’의 설정 역시 영화적인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원흉 같아요. 사실 강해상 캐릭터는 설정 자체가 조금 혼란스럽더라고요. 대기업이 고용한 프로페셔널한 건달 한 부대를 혼자 괴멸할 정도의 전투력을 보여주는데, ‘그게 맞나?’ 싶었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센 용병을 부릴 텐데, 강해상은 그저 타지에서 혼자 강도짓으로 연명하는 정도잖아요. 강해상의 전사가 없다 보니 그런 식으로 임팩트를 준 것 같은데, 그럼에도 전투력, 카리스마, 매력, 철학 뭣 하나 전편의 장첸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행동 하나하나가 쉽게 납득도 안 가고요.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좋아하는 부분에 한껏 힘을 주고, 해외 로케이션 등을 동원해 세계관까지 확장했지만, 과욕과 무리수가 밸런스를 무너뜨렸고, 넓어진 만큼 틈새가 드러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chap 2. 8편까지 기획했다고? 벌써 식상한데?
필자의 감상과는 전혀 상관없이 2편 역시 큰 사랑을 받았죠. 개봉하자마자 사전 예매율 신기록을 달성했을 정도니 이미 성공한 프랜차이즈라고 봐도 무방하네요. 여세를 몰겠다는 듯, 2편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3‧4편에 대한 소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범죄도시 3편은 이미 촬영까지 다 마쳤다죠. 광역수사대로 이동한 마석도가 새로운 팀과 펼치는 범죄 소탕작전을 그렸습니다. 일본 야쿠자도 등장하는 걸 보니, 마약 사건이 주된 소재인 것 같네요. 이준혁, 이범수, 김민재, 아오키 무네타카 등이 출연합니다. 이어 4편은 국내 최대의 불법 온라인 도박 조직을 잡는 얘기인데 김무열, 이동휘 등의 배우가 합류했습니다.
극의 소재나 배우들의 면면을 보니 기대보단 우려가 먼저 드네요. 스마트한 이미지의 이준혁 배우가 메인 빌런이면 결국 지능형 범죄자일 텐데, 그럼 마석도는 누구랑 최종보스 전을 할까? 야쿠자가 결탁된 마약사건이면 총질도 서슴지 않을 텐데, 총앞의 마석도는 뭘 보여줄 수 있을까? 사이버전담팀과 협업을 한다던데, 그게 ‘범죄도시’의 톤 앤 매너와 맞나? 하는 우려들입니다. 자칫 식상함을 극복하려는 시도 탓에 본 작의 통쾌함과 캐릭터의 매력을 모두 잃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우마저 생기네요.
범죄도시의 행보를 보니, 문득 영화 ‘미션 임파서블’이 떠오릅니다. 올해 7편이 개봉될 정도로 성공한 프랜차이즈의 대명사죠. 필자 역시 좋아하는 영화이고 즐겨보는 시리즈이긴 합니다만, 새로운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이 그리 충만한 편은 아닙니다. 그저 의리로 보는 영화에 가깝죠. “환갑 넘은 톰크루즈가 죽어라 고생하는 거 보는 영화”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미션 임파서블은 매번 더 화려해지고 거창해집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저 조직의 배신자를 찾고, 애인을 구하던 이야기에 불과했죠. 4편으로 넘어오면서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내는 얘기, 즉 세상을 구하는 얘기로 확장됩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진짜 ‘재미’를 느꼈던 건 3편까지였어요.(2편은 스핀오프 느낌이긴 합니다만 나름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4편부터는 왠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제작 컨베이어 벨트 위를 그대로 거치며 뽑힌 영화, 한 해에도 수십~수백 편이 쏟아져 나오는 몰개성한 영화 중의 하나로 보일 뿐입니다. 쉽게 말해 진부하고 식상하죠. 이야기의 세계관이 팽창할수록 개성은 사그라지고 몰입도는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범죄도시 역시 비슷한 것 같아요.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지만, 진짜 악질 범죄자에게만큼은 자비가 없다는 신념을 가진 경찰, 자신도 가리봉동 주민이라고 강조하며 우리 동네를 위해 맞서 싸워야 한다던 1편의 주인공은 그 자체로 충분히 멋졌습니다. 비록 명석하진 않아도 누구든 맨 주먹 하나로 참교육 시키는 전투력도 꽤나 통쾌했고요. 소명의식보다는 직업의식이 더 컸기에 ‘현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란 기대감마저 갖게 했죠. 그래서 열렬히 응원했어요. 어딘가에 있을 그를 대신해 말이죠.
하지만 한국 형사 영화의 대표적 클리셰인 ‘광수대’의 일원이 되어, 마약 범죄를 다루고, 사이버 전담 수사를 펼치는 주인공의 모습은 식상합니다. 꼭 마석도가 해야 될 이유도, 꼭 범죄도시에서 그려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위기에 빠진 세상을 매번 이단헌트(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가 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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